[소그룹] 545호 -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가라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가라
누군가가 “당신의 공동체는
어떤가요?”라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순간 멈칫합니다. 더더욱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동체로 모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질문은 뼈아프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성 훈련’이라는 문구를 접할 때 우리는 개인의 삶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케 하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편지를 개인에게 쓴 것이 아닙니다. 당시 신약 서신의 대부분은
공동체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영성 훈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의 이상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처방합니다. 공동체의 목표는 한두 사람이 아닌 교회이며, 영적 건강의 진단은
공동체를 두고 이뤄집니다. 샌프란시스코 멘로파크 장로교회 담임목사인 존 오트버그는 개인의 영적 성장을 중요시하는 것도 유익하나,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점검하고 진전시키는 현실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호흡
오랜 옛날부터 호흡은 영과
연관되어 생각되어왔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는 영과 호흡을 모두 한 단어로 가리킵니다. 가끔 사람들은 호흡하는 것이 재미없고 별 볼일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짧은 실험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테이프로 입을 막고 코를 세게 막아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1분도 지나기 전에 호흡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공동체가
호흡하기를 멈췄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손을 들고 찬양을 하며 춤을 추는가로 성령님의 임재를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성령님의 열매로 가장 잘 드러납니다. 꽉 막힌 도로와 주차할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주차장에서 우리는 오래 참음의 열매가 얼마나 잘 익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전
비전은 교회의 건강에 있어
아주 필수적이지만,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왜 많은 교회들의 영성 운동이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나는지에 대해
달라스 월라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대답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비전’에서
시작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나 존 웨슬리에게는 그들을 사로잡았던 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전은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이다’에 대한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원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일에 대한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사로잡았던 비전은
‘하나님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선하시며 놀라우신지, 그런 그와 함께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섬길 때에
비전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의 초점이 자주 ‘하나님’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빨리 이 문제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리더들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혈액
혈액 순환이란 필요한
영양소와 산소를 몸의 구석구석에 배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큰 근육들이 매초에 2천5백만의 적혈구를 생산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혈액 순환에 이상이 생기면, 독소들이 몸의 곳곳에서 쌓이기 시작하고 에너지는 낭비됩니다. 이 같은 일들은
겉으로 표시도 나지 않게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의 구석구석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에 벌써 익숙해져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이 그저
묵인되고 있는지, 우리의 공동체 안에 감춰진 죄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자만과 오만으로 자신만만해 하지는 않는지, 우리의
공동체에서 회개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지? 역사를 살펴보면,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이 시작될 때마다 언제든지 죄에 대한 회개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지체를 알아가게 되고, 그래야 우리 안에 있는 독소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영양분
바울은 고기와 우유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참기 힘든 성도들의 불평 중 하나는 바로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불평은
때때로 더욱 깊이 성경을 알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어느 누가 얕은 지식만을 원하까요? 문제는 깊이 성경을 알고
싶다는 말이 과연 무슨 뜻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알고 싶다는
갈망의 배경에는 거의 대부분 더 많은 강의와 강해적인 성경 분석에 대한 요구가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 우리에게 친숙한 본문들에서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교훈들, 성경 분석을 통해 깨닫게 된 교훈들을 가르쳐 달라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매 주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깊이와 영양 섭취를 말할 때 정보를 염두에 두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얻는 정보가
그리스도의 몸에 필요한 최우선의 영양분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에 필요한 최고의 영양분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보습득을 영적 성장과 동등하게 본다면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몸이 된다는 의미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가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눈,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손을 뻗어야 합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해야 하는 일이고, 우리가 소망하는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 이 글은 『디사이플
2010년 7월호 해외저널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The ”WE“ WE Want to Be)”, 존 오트버그』의 내용을 일부 발췌 및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