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480호 - 우리는 잘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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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배너(David G. Benner)의 말처럼 경청 능력의 성장을 막는 주된 걸림돌은 우리 대부분이 이미 스스로 잘 듣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심리치료사들에 따르면 많은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함은 말만 많아서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이룰 수도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친밀함은 일방적 대화를 통해서 또는 경쟁처럼 느껴지는 교류를 통해서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를 발견하려면 다른 목소리들과 별개로 내 목소리만 찾아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목소리를 찾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워싱턴 포스트와 심리학 투데이에 오랫동안 경청에 대해 기고했던 애덤 S. 맥휴(Adam S. McHugh)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는 경청은 우리의 영성, 관계, 그리스도의 몸 된 사명, 문화나 세상과의 관계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며, 무슨 일에 임할 때든 먼저 듣는 게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하며, 경청하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우리는 경청의 올바른 기법인 능동적 경청, 풀어서 말하기, 거울처럼 반영해 주기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청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병기 창에 가득한 기술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최선의 길은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경청을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어렸을 때 누군가 잘 들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들어주는 부모를 타고날 만큼 누구나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보니 많은 이들이 경청이 결핍된 상태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듣는 사람을 찾아 본받아야 합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으로

경청은 상대를 고유의 자신으로 놓아두는 신성한 선물입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과 신념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며, 상대의 말을 내 비판적 기준으로 걸러내지 않습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이해하려는 경청은 느린 작업입니다. 잘 듣는 사람은 그 먼 길을 소신껏 가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길을 피합니다. 얼른 판단해서 금방 조언을 베풀면 진도를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경청 방식을 보면 당신의 생활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이 늘 바쁘고 급하고 부산하다면 들을 때도 산만하게 서두를 것입니다. 이해하려는 경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 자체만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방식까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논리와 추론을 최대한 많이 구사하지만 어떤 이들은 말에 감정을 담습니다. 유머로 고통을 에둘러 가려는 이들도 있고 과장법을 써서 중요한 일에 주목을 끄는 이들도 있습니다. 잘 듣는 사람은 각자의 개인적 방언을 익힙니다.

나쁜 경청의 흔한 사례를 기억하라

한 수 더 뜨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는가? 지난주에 나한테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상대의 이야기를 말없이 쭉 듣는 이유는 더 낫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경쟁입니다.

교묘하게 말 돌리기 "어, 그거 대단한데. 그런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화자는 경청에 속아 헛되이 방심한 나머지 잠시 후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즉 이 대화에 대한 듣는 이의 속셈을 모릅니다.

심문 "지난주에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듣는 이는 일련의 질문을 던지는데 대개 폐쇄형 질문이며, 마치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하여 자백으로 유도하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경청은 천둥을 앞둔 번개이며 펑하고 터지기 전에 타버리는 신관입니다.

방향틀기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말이지…" 듣는 이는 화자가 언급한 주제를 서투르게라도 뒤집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기어이 자기가 원래 하려던 말을 하고야 맙니다.

독백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는 묵묵히 있다가 그 다음부터 아무거나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마치 야간에 두 척의 귀먹은 배가 마주 지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인용문이 떠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화하는 게 아니라 타인 앞에서 독백을 합니다.

정비사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이 사람은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를 듣는 정비사처럼 듣습니다. 문제를 진단하여 자신이 고쳐주려 합니다. 문화적 통념과 달리 남녀가 공히 이런 과오를 범하게 됩니다.

부메랑 질문 "주말을 잘 보냈는가? 나는 말이지…" 이 사람은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진짜 의도는 자기가 답하려는 것입니다. 질문이 나가다가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자문자답할 거라면 상대에게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때로 부메랑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냥 당신의 주말이 어땠는지 말하시지 그럽니까?" 그러면 대게 내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이 글은 『 경청, 영혼의 치료제 』(애덤 S. 맥휴,CUP)의 내용을 일부 발췌 및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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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경청, 영혼의 치료제

이 책은 경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탄탄한 성경 지식과 목회와 상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청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친절한 지침서이다. “경청”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삶과 신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성경적, 심층심리학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실제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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