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837호 - 리더, 사기꾼이 아닌 사잇꾼이 되라
신뢰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 리더십
4월 27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과 대선 기간을 지나는 동안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급락했습니다. 2020년 조사 당시 31.8%였던 신뢰도가 2022년도 조사에서는 18.1%까지 떨어졌고, 신뢰 회복을 위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0.2%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리더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세상에서도, 교계에서도 주목을 받던 한 리더의 소천과, 그의 리더의 덕목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 큰 울림을 줍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암 투병 끝에 지난 2월 26일 향년 89세로 소천한 이어령 교수입니다.
그는 본래 무신론자로 기독교계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먼저 소천한 그의 딸 이민아 목사의 전도를 받고 그 말년을 성도로 살았습니다. 전에는 그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날카로운 지식의 탐구에 쏟았다면, 성도가 된 후에는 그의 책 제목처럼 지성에서 영성으로 그의
탐구영역을 넓혔고, 복음과 생명의 능력을 알아가고 표현해 내는 데 진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 암발병을 확인한 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게 된
그가, 제자임을 자청한 기자 김지수와 진행한 16번의 인터뷰를
담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속에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고찰한 생명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그중 특별히 “리더의 역할”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바로 15장 “또 한 번의 여름-생육하고
번성하라”입니다.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어령 교수는 리더를 공동체의 생명력에 핵심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그가 강조한 부분들을 기억하기 쉽게 세가지
“목”, 즉 3목으로
요약하여 다시 정리해 보며, 한국교회 리더십의 신뢰 회복을 위한 힌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리더, 건강한 공존의 핵심
이어령은 리더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생명력을 위해 필요한
연속성에 대해 먼저 강조합니다. 정확한 구분을 필요로 하는 현대 기술의 디지털적 방식이 채울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연속적인 존재를 강조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사람이 사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형태로서 “라이벌” 관계를 예로 든 그는, 공동체
안에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라이벌의 어원을 “리버”, 즉 “강”으로 해석하면서, 강줄기 하나를 나눠 마시는 윗동네와 아래동네가 서로
경쟁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상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그룹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리더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1목, 리더는 “목”이다
먼저 이어령은 리더를 “목”으로 비유합니다. 생명체의 급소인 목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데, 그는 “목”을 손목, 발목과 같이
분리된 신체의 두 부분을 이어주는 “이음새”로 연장해 해석했습니다. 목에 칼을 씌우고, 손목과 발목에 수갑과 쇠고랑을 차면 사람이 꼼짝
못하게 되고, 길목을 통제하면 지역이 통제되는 것처럼, “목”이 되는 리더는 전체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묘사에 비추어 보면, 한국교회의 리더가 신뢰도를 잃는 것은 바로 “목”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이 다시금 제 기능을 하여, 목 양쪽의 두 구분된 존재, 즉 세상과 교회 또는 교회 내의 다른 그룹들을 분명히 구분해 인정해 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양쪽을 소통하게 하는 리더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만 한국교회의 생명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는 나의 존재가 과연 양쪽을 잘 소통하게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목, 리더는 화”목”자다
소통하게 하는 목적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의 오감에 있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관계의 회복에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라이벌 관계를 막히지 않고 융합하는 역할, 즉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을 리더로 묘사하며, 한 조직 내의 리더는 서로 다른 부서, 서로 다른 그룹을 오가며
관계를 풀어주고 다리를 놓는 사람, 우리말로 표현하면 “사잇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기꾼은 이간질 하는 사람이지만
사잇꾼은 사이를 오가며 함께 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말을 빌려 보면,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인상처럼
다른 이들을 움직일 강력하고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구분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들어가 소통의
길을 트는 화목자로서의 노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모두에게 지식과 정보가 공유된 사회입니다. 다른 이들을 일방적인 발언으로 사로잡는 과거의 방식은 갈수록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기꾼 취급 받기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리더는 나의 언변을 단련하기에 힘 쏟기
보다, 오히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스스로 “사이에 있는
사람”인지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3목, 리더는 “목”자다
이어령 교수는 리더가 “목”이라는
비유를 기존에 그가 강조한 양치기, 즉 “목자”의 리더십과도 연결합니다. 그는 목자는 양의 앞이나 뒤에 머무르는
리더가 아니라 양의 사이로 들어가 동참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참된 목자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를 찾는 다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그는 한 마리의 중요성, 한 개체의 중요성을 찾았으며, 각각의 한 사람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받은 한 사람, 좋은
리더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리더라면, 예수님께서
친히 화목제물 되신 것과 같은 역할을 나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리더임을 자인한다면, 양들 사이로 들어가 먹고 자며 함께 걸어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나의 공동체와 함께 먹고 자고 있는지, 그 사이로 들어가 동참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어령 교수의 대담 속에 발견된 리더의 3목을 되새겨 보면서, 한국교회가 당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저. 열림원(2021). 15장
“또 한 번의 여름-생육하고 번성하라” 내용중 일부를 발췌 및 각색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도서소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
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스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