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785호 - 말씀은 공동체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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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봉 치우기

많은 현대 신앙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확신과 격려를 주는 성경 구절에서 더 감동을 느끼려고 하나님이 마치 자신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처럼 상상하길 즐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힘이 되는 말씀을 찾고, 실제로 말씀이 주어진 대상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나에게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게 되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구속적 사랑이 느껴집니다. 말씀 몇 줄을 맥락과 무관하게 원래의 청중에게서 떼어내 자기 것으로 읽었을 때는 안 보였던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웅장한 스케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머릿속에서 무대 중심에 있는 나를 밀어내고 이스라엘이 스토리의 초점이 되게 해봅시다. 그러면 자신보다 다른 이들의 관심사를 돌아보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모두를

영어의 ‘you’는 복수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성경 본문이 집단에게 하는 말을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유명한 계명 역시, 사실은 이스라엘이라는 ‘인격’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조상이나 지도자는 종종 전체 집단과 하나로 그려집니다. 유대인 학자 마이클 피쉬베인은 이것을 “그들은 다 함께한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라고 말합니다. 한 집단을 향해 마치 그 집단이 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방식은 특히 신명기와 이사야서에 흔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신약도 우리에 관하여 “한 몸” 또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바울이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1)라고 가르쳤을 때도 같은 논리였습니다.

왕국 복음

개인주의자들은 ‘왕국’이라는 단어를 어렵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쉬지 않고 왕국에 대해 전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왕국’이라는 단어가 ‘공동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것이 매우 이국적이고 추상적인 발상이라고만 여깁니다. 왕국은 하나님과 그분이 구속하시는 사람 전체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복음’이란 단어를 찾을 때 구원에 관한 개인적 메시지를 찾지만, 예수님은 백성을 ‘통으로’ 속량하신다는 차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개인주의로 인해 사유화된 신앙으로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이 교회 출석이 무익하다면서 이탈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몸 안의 많은 조직과 장기가 떠나버린 교회의 나머지 몸은 그 자리를 메우느라 버거워 합니다. 리더로서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요?

‘우리식 사고’가 가르쳐 주는 바는?

우리가 개인주의로만 살아갈 것 같지만 실은 우리도 상당히 빈번하게 집단주의 사고를 하는데, 이것을 ‘저들식 사고’(they-thinking)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한 집단이 마치 한 덩어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집단의 모든 구성원을 한통속으로 보는 것입니다.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화가 날 때 이런 식의 사고를 심심치 않게 합니다. 고정관념과 인종차별은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악한 유형의 집단적 사고의 산물입니다.
비극적인 일례가 그리스도인이 오랜 세월 유대인에게 부여한 ‘그리스도의 살인자’라는 명예훼손적 비방입니다. 왜 수천 년 전 일어난 살인으로 오늘을 사는 유대인을 고발합니까? 이 비방은 전 집단이 이음새 없는 단일체로 움직이고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역사 속에서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실상을 안다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는 예수님에 관한 소중한 통찰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개인주의자는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봅니다. ‘저들식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스스로 유대 뿌리를 잘라낸 것이 죄라고 격분합니다. 혹자는 유대 민족을 고발하는 데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죄책으로 교회를 고발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신도 그 ‘집단’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입니다.
최고의 대응은 ‘우리식 사고’(we-thinking)입니다. 이들은 “과거의 사람들과 나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유대인을 박해한 것을 애통해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식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변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내 그리스도인 지체들과 이 풍성한 유산을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는 구성원들이 개인주의를 벗어나 ‘우리식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와 교회가 왕국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 』(로이스 티어베르그, 국제제자훈련원) 내용 일부를 발췌 및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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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

예수님의 공식 명칭은 ‘랍비 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랍비 예수님의 안목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오리지널 메시지에 접근하는 지름길입니다.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도 더 쉽고 흥미진진하게 약속의 땅과 그 땅의 주인 그리고 우리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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