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504호 - 더불어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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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에서 깨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해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심한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그 관계를 끝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그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또는 해를 입힌 사람을 근본적으로 악독한 사람으로 비난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화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를 성경에서 찾습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를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기 위해서나, 책임을 회피하고 상처를 준 사람과의 단절의 가책에서 자유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에 대해 단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고, 우리는 주변의 세상, 심지어 원수에게도 같은 사랑으로 화해를 이룰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바울의 가장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편지인 고린도후서에서 우리는 이러한 투박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관점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고통과 화해

바울은 목회자로서 고린도 교회를 깊이 염려하며 고린도후서를 씁니다. 그는 불안, 사랑, 상처 및 기쁨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1-4).

바울은 문제가 있는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고, 이후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확증하기 위해 눈물 어린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읽는 것은 얼마동안 계속되어 온 집안싸움의 고통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지위를 변호하는 한편(고전 10-11장), 화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자신을 버립니다.
바울은 이 고통스런 상황에서 자신의 소중한 동료인 디도를 의지하며, 여러 갈등 상황에 놓인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고린도후서에 언급된 눈물 어린 편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바울은 편지를 전달하고 돌아온 디도를 만났고, 그의 눈물 어린 편지에 대한 고린도 교인의 반응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거의 행복감에 도취에 있는 듯합니다.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7:6-9).

이 구절은 바울이 얼마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디도를 만나고 자신의 편지에 대한 교린도 교인들의 반응을 알게 되었을 때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유일한 소통 수단인 편지를 사용하여 고린도 교회에 대한 큰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화해에 있어 단호합니다. 그는 그저 화해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았고, 그것을 막연히 희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해를 이루기 위해 직접 일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

화해는 기독교적 영향력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관계하는 방법에서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 화해는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화해라는 결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깨어진 관계를 다루는 방법은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세계를 향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과의 깨어진 관계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며, 바울과 디도는 회복을 위해 어떻게 일했나요?
첫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화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화해를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오셨는지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평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바울과 같은 상황에서 디도처럼 그룹 또는 개인 간의 갈등 앞에 서 있는 화해의 중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많은 갈등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화해를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서투르게 표현하고, 또한 화해를 원하는 상대방은 그 말을 왜곡해서 듣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디도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디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그 갈등과 직접적 관계가 없어도 화해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베테랑 악마인 스크루테이프는 그의 조카이자 수습 악마인 웜우드에게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전심으로 그를 따르는 것을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지에 관해 조언합니다. ‘환자’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합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보거라. 그건 고작해야 네 환자의 영혼에 약간의 자비와 약간의 악의만 불어넣을 뿐이란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매일 만나는 이웃에게 악의를 갖게 하고,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갖게 하는 것이란다. 그래야 악의는 완전히 현실이 되고 자비는 허공을 떠도는 가상의 것이 될 것이야.”
C.S. 루이스는 매일같이 마주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먼 곳에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가장 쉽다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도는 고린도 교인들과의 고통스러운 딜레마 속에서도 화해를 진실한 화해를 실천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이 글은 『 팀메이트』 (라이언 로크스모, 한국장로교출판사)의 내용을 일부 발췌 및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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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팀 메이트

기독교의 리더십을 단순히 교회 안으로 국한하지 않고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로서의 새로운 기독교 리더십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 책을 따라 바울의 선교 여정에 함께하며 그동안 지나쳐 버렸던, 하지만 바울에게는 삶의 전부이기도 했던 수많은 동역자들과 잊고 있었던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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