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446호 - 소그룹이 ‘있는’ 교회에서 소그룹 ‘중심’ 교회로
소그룹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한국교회에는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구역, 속회, 전도회 등의 이름으로 성도들은 소수의 인원으로 나뉘어져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그룹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중심은 대예배실에서 모이는 주일 오전 예배입니다. 구역이나 속회 그 모임 중에서 끼리끼리 모임을 갖는 친목단체 정도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처럼 소그룹이 ‘있는’ 교회는 소그룹이 가져다주는 역동성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습니다. 예배 중심의 교회는 그 초점이 설교단에 선 담임목사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청중의 상당수가 어떠한 소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거나, 이름만 소그룹에 배치되어 있을 뿐 제대로 출석한 적이 없지만 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매주 들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소그룹이 가져다주는 역동성이 나타나게 하려면 교회를 소그룹 중심 체제로 변환해야만 합니다. 이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이 커다란 변화라는 사실입니다.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는 소그룹을 교회 사역의 기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의 모든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고, 지금까지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던 대상을 바꿔야 하는 일입니다. 설교도 달라집니다. 각 개인이 독립된 사람들로서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청중과 여러 소그룹이 다시 하나로 모여 있는 청중은 완전히 그 성격이 다릅니다. 새롭게 탄생한 작은 공동체들은 상처받기 쉽고 관계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므로 담임목사는 이들에 대해 하나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그룹 중심 교회로의 전환이란 결코 그냥 사람들을 몇 명씩 묶어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리더십이 각 소그룹이 작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소그룹 중심의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전 교인들을 담임목사 1인이 장악한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소그룹 중심 교회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소그룹 중심 교회의 유익만을 취하겠다는 생각으로 어설프게 구조를 변화시키려 한다면 차라리 “소그룹이 있는 교회”로 남아있는 편이 낫습니다.
어설픈 구조 변화란 이런 것입니다. 갓 부임한 중고등부 담당 목사나 교육목사에게 소그룹 사역을 일임하거나 “우리 모두 조금씩 짐을 나눠지자”면서 소그룹 사역을 여러 사역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소그룹 중심 교회로의 전환은 교회의 핵심틀을 바꾸는 수술과도 같습니다. 그리 큰 권한이나 영향력이 없는 부교역자에게 소그룹 사역을 맡기는 것은 이제 갓 의대를 졸업한 인턴에게 심장이나 척추 수술을 맡기는 것과 같고, 나눠서 맡는 것은 여러 의사들이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수술을 진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소그룹 중심 교회로의 전환을 담임목사가 직접 진행해 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농구경기에서 “포인트 가드”가 다섯 명의 팀원들을 전적으로 지휘하는 것과 같이 교회의 “포인트 리더”가 될만한 사람에게 권한을 철저히 위임해 주어야 합니다. 그는 아마도 그 사역 때문에 다른 사역자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자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역을 위해 헌신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기를 꺼리지 않는 사역자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이 일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소그룹 사역은 그저 몇 사람들을 모아주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시간, 인력, 재정의 투자를 아끼지 않을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비용을 예산하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글은
『
소그룹 중심의 교회를 세우라
』 (빌 도나휴, 러스 로빈슨 공저, 국제제자훈련원)제 4부 소그룹 중심의 교회 인도하기의 일부 내용을 발췌, 각색된 것입니다.
도서소개
소그룹 중심의 교회를 세우라
어느 누구도 홀로 있지 않은 곳, 그곳이 바로 교회여야 한다. 이 책은 소그룹을 당신 교회의 전체 사역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전과 가치, 전략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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