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반문화적 인물이었습니다. 고대세계를 뒤흔들어 제왕들과 신분제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겸손과 긍휼, 섬김의 정신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당시의 신념과 행동에 도전하고 이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2,000년이 흐른 지금, 예수님이 원하셨던 변화는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자아도취의 문화에서 자기희생의 문화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믿음에 내포된 반문화적인 행동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기대되는 겸손과 긍휼은 회사의 복도나 꽉 막힌 도로 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도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들이 작성하는 소득신고서가 더 정직해질 것이고, 이웃을 대하는 태도는 더 친절해질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그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일어납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내가 곧 교회다.”라는 의식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주인의식입니다.
성도들이 그저 교역자들이 마련한 행사에 참여하는 청중의 자리에 머물도록 하면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기대수준은 더 높아져야 합니다. 그저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가끔씩 자발적으로 봉사나 기부를 하는 성도들로 교회에 채워져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내가 곧 교회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역의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여러 사역들이 교인들을 위해서 어떤 요소를 갖추고 있는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돌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들이 교회와 이웃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모범적인 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내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없다”에 강한 동의를 표현합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환경 없이 자기 신앙을 삶으로 구현할 수 있으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인의식을 형성하는 데에는 보통 세 가지 주요 전략이 사용됩니다. 첫째,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타파하고 평신도들에게 높은 수준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합니다. 목회자가 결정한 일을 실행하도록 돕는 사람이 아니라 평신도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합니다.
둘째, 그 권한과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실제적인 준비를 시킵니다. 즉 권한과 책임을 주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역에 필요한 도구와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팀 그레이 목사의 브리지 커뮤니티 교회에서는 등록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14시간짜리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만 하며, 소그룹 리더기 되기 위해서는 성경 교수법과 목회양육, 성경상담에 대해 35시간짜리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높은 요구수준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셋째, 자기 홀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안전한 관계의 네트워크를 마련해 줍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소그룹으로 조직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높은 요구수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단지 공동체를 제공하고 관계를 맺고 우정을 형성해 가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소그룹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가 되고, 거기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자리에까지 발전해 가야 합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때, 교회는 진정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MOVE』 (그렉 호킨스, 캘리 파킨슨 저, 국제제자훈련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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