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설교자 중에는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 한 편의 설교 안에 너무 많은 메시지를 포함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수많은 자료를 찾고, 청중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열거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많이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중도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여섯째 진리는...”이라고 말하는 설교자의 열심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청중은 한 설교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합니다. 의욕적인 소그룹 인도자 중에도 이런 지나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한 끼 식사를 제공받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잡다한 간식거리를 늘어놓는 것과도 같고, 마실 물 한 잔을 원하는 사람의 입에 소방호스를 겨누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상은 대부분 본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준비’를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성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깊은 성찰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많은 자료는 있으되 하나의 통합된 메시지는 없게 됩니다. 깊은 성찰이 없는 설교를 들은 청중이나, 본문을 깊이 성찰하지 않은 인도자의 소그룹 성경공부에 참여한 조원들은 모두 “뭔가 많은 것을 들은 것 같은데, 뭔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본문의 요점에 대한 바른 성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문 저자의 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바울이 쓴 서신이라면 바울이, 모세오경이라면 모세가, 사도행전이라면 누가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본문을 썼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장 먼저 가져야 합니다. 그 후에 그 전체 의도 안에서 오늘의 본문이 가지는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주어진 본문을 읽고, 그 본문을 요약해 보십시오. 본문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 자꾸 반복되는 단어나 문구가 있다면 거기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주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색다르거나 엉뚱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왜 이런 이야기가 여기에 들어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두 가지를 서로 대조시키고 있거나, 또는 반어법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본문의 주제는 주로 이런 요소들과 함께 주어집니다. 단, 이렇게 도출된 본문의 주제가 앞서서 파악한 “전체 의도”와 관련이 없거나 배치되는 느낌이라면, 그 주제는 잘못된 것입니다.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주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이제 소그룹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요점이 무엇인지 정리하십시오. 그 주제가 바로 요점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소그룹 시간에 그 요점 하나만을 다루면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그룹 시간에 다뤄지는 여러 교훈들은 모두 그 요점과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조원들 중에는 요점으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도자는 그런 사람들을 요점에서 떠나지 않도록 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조원들이 주제로부터 이탈하는 이유는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 주제로부터 회피하려는 심리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인도자는 이를 잘 파악하여 이해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해를 돕고, 회피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직면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 이 글은 『해석, 성경과 삶의 의미를 찾다』“해석, 성경과 삶의 의미를 찾다”(다니엘 도리아니 저, 성서유니온선교회 간)의 일부 내용을 발췌,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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