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 기업, 정부, 노동조합, 대학 등과 같은 거대한 제도적 기관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기관들이 사람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합니다. 인간이 기관을 만들었는데, 기관이 인간을 섬기지 않고 인간이 기관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기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 기관 외부에서 이뤄지는 비판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 기관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전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리더입니다.
제도적 기관이 지배할 뿐 섬기려 하지 않는 이유는 리더가 그 기관에 속한 사람들을 이해심과 올바른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입니다. 앞장서서 이끌지만 최선을 다해 섬기는 유능한 종(Servant)이 사람들이 따르는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는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시대입니다. 지도자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엔지니어, 학자 등 기능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넘쳐나고, 그들 중에 지도자로 세워지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중에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교회 뿐 아니라 이 사회 역시도 “종”과 “지도자”의 능력과 태도를 동시에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이유는 사회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 시대정신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섬기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며, 교회가 그 안에서 끊임없는 불협화음으로 신음하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기까지 하는 이유 역시 예수님처럼 섬김으로서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처음에는 종이나 하인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직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종의 마음으로 사역하기에 마치 종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진정으로 섬기기 원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섬김을 받기 원하는 상황을 알아채고 먼저 섬김의 자리에 나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는 먼저 지도자가 되길 원하다가 나중에야 양심의 충동질이나 사회적 규범 때문에 마지못해 섬기는 체하는 지도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섬기는 지도자는 그래서 사람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생각합니다. 솔선수범하여 움직이지만 따르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둡니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여 다른 이들을 섬기면서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늘 조심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무엇보다 내 꿈과 비전이 아니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모두의 꿈을 실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사역합니다.
어쩌면 이 사회나 교회의 진정한 적은 사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착하고 영리하며 활기찬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도자로서 섬기기를 포기하고 군림하는 태도를 가질 때, 또는 충분히 지도자의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지도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비판하고 지적하는 자리에만 머물려고 할 때, 그들은 그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적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비판하는 사람들, 전문가, 지식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불완전한 공동체를 좀더 낫게 하기 위한 위험을 기꺼이 떠안으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이 글은 서번트 리더십 원전(로버트 K. 그린리프 저, 강주헌 역, 도서출판 참솔)의 일부 내용을 요약,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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