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목회자가 어떤 교단의 지도자 모임에 ‘영성 개발’과 관련해서 특강을 부탁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초대에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 열심히 강의를 준비를 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강의의 분위기를 띄우고 주제 강의 서론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과 깊은 관계를 나눌 수 있고, 은혜를 느낄 여러 가지 많은 방편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기도, 고독, 침묵, 성경, 금식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강사는 정말 잘 다듬어진 서론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서론을 이어가는데 청중의 반응이 싸늘해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교단은 하나님께서 오직 세례와 성찬만을 은혜의 방편으로 허락하셨다고 열렬하게 믿는 교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론에서 그 말을 한 이후로 누구도 강사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 : 서로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갈라서야 한다. 어느 교단, 어떤 교회든지 그 비슷한 일들이 교회들 사이에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것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일이 그러니까, 몇 개의 단어 때문에 그런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런 일을 조장하고, 계속해서 이런 일들을 부추기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서 올바른 생각을 찾아내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 뒤에 숨겨진 두려움 먼저 강사를 배척한 그 교단의 목회자들이 악의를 가지고 행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자신들에게 위험한 요소가 함께 들어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의 중심에는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배타성은 우리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거짓 교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켰고,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을 우리의 모임에서 몰아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들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사랑이다. 이 사랑은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만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내 자신과 성품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졌을 때에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하우어워스가 정확하게 지적한대로 우리는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의 대부분은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용서받은 사람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질 때 두려움을 온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모든 이슈에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우리의 문화와 예배의 형식이 다른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은 명령이지, 분열을 위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른 생각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생김새, 행동, 예배, 믿음이 나와 다르지만, 당신의 심장이 예수를 위해 고동치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와 교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예배의 형식, 옷차림 등의 교회 정치에 대한 다른 의견이 하나 되게 만드는 교회를 갈기갈기 나눌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연합된 몸입니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조에 나오는 모든 기본적인 교리들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교단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여러 가지 각양각색의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 저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나이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민족’을 의미하는 단어는 ‘에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ethnic’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종,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하나의 교제권으로 묶으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를 통해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분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가 주님의 열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0-21) 주님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에클레시아’안에서의 하나 됨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서로 갈라놓을 수 없다고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단 하나의 근원을 통해 하나 됨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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