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몸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제는 단순히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한 교제를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제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교제일까요? 릭 워렌 목사는 그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교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에게 진실한 것이다
진정한 교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상호 작용이 아니라 진실하며 때로는 아주 깊은 나눔이 있는 교제를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만 가능한 교제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실패를 고백하고, 의심을 보이고, 두려움을 시인하며, 약점을 깨닫고 기도를 부탁하는 일들은 서로에게 진실하게 대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가식적으로 친절한 모습만 보이면서 상대방을 경계하는 태도는 결코 진실한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진실한 교제는 위험한 일이고, 용기가 필요하며, 겸손해야 할 수 있습니다. 노출, 거부 그리고 또 다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제할 때 그들은 서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는 관계가 됩니다.
진정한 교제는 상호 의존한다
상호 의존은 주고받는 것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의 핵심입니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을 나누며, 서로를 돕는 것이 교제의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우리를 격려해주면 믿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상호 간의 책임, 격려, 섬김, 그리고 존경에 대한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롬 12:10). 또한 신약성경에는 ‘서로에게’ 또는 ‘서로를 위해’ 살라는 말씀이 50번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노력해야 하는 책임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그들을 돕기 원하십니다.
진정한 교제는 사람들을 공감한다
공감하는 것은 충고를 하거나, 빨리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공감을 통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근본적인 필요 즉, 이해 받고 감정의 정당성을 확인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해주고 이해해줄 때마다 그와의 교제는 더 깊어 집니다. 반대로 우리가 너무 급하게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공감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와의 교제는 피상적이 될 것입니다. 심각한 위기와 깊은 슬픔, 그리고 의심의 상황을 만나 믿음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지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며 그의 말을 들어줄 친구입니다. 우리가 그런 친구가 되어 준다면, 그는 소그룹 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자비를 경험한다
진정한 교제는 자비가 정의보다 강할 때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흔들리거나 넘어질 수 있고,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돕기 위해 자비를 베풀고 서로에게 자비를 구할 때 진정한 교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용서 없이는 교제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그 자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이상의 용서는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뢰와 용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것을 주저합니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고, 신뢰는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그것을 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바로 해야 하는 것이고, 신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줄 때, 우리는 그를 계속 용서해주어야만 하지만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소수일수록 더 좋습니다. 큰 무리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는 있지만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교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내용은 <목적이 이끄는 삶> 중 “제 18일, 삶을 함께 경험하기”에서 발췌,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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