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리더로서 세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본이 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이 원리는 세상의 리더십이 말하는 리더십과는 동떨어져 있는 리더십입니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종의 리더십조차도 종처럼 섬기는 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말할 뿐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리더십과 견줄 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존 맥아더의 <참된 무릎꿇음>의 첫 장을 통해서 저희가 바로 된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노예 된 자의 자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가장 많이 ‘주(Lord)’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큐리오스’입니다. 이 단어는 절대적인 주님을 말합니다. 이와 함께 자동적으로 수반되어 주인의 반대되는 개념을 일컫는 단어는 ‘둘로스’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 시대에 주인이 법적으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최하층 노예를 가리킬 때 사용한 단어 입니다. 즉 ‘둘로스’는 아무런 지위도 권리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번역자들은 오랫동안 ‘노예(slave)’ 대신 ‘종(servant)’라고 이 단어를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모호하게 사용해왔습니다. 사실 헬라어에는 종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분명 ‘둘로스’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둘로스’는 “인간의 자율성을 잃어버린 채 외부의 의지가 자신의 의지보다 앞서는” 바로 그러한 노예를 말합니다. 더 높은 권위와 통제와 지시와 절대적,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행할 수 없는 자, 바로 천하고 비참한 노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종이란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지만 노예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는 단순한 어감의 차이가 아닌 아주 중요한 의미적 차이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 말씀하시며 노예와 같이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것은 성경이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고 복종해야 할 우리의 의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교회의 리더로서의 의무가 무시되거나 약화시킬 수 없다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실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진부한 용어가 자주 사용되면서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 절대적인 주님을 모셔야 하는 복음의 핵심이 약화됐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친구가 되길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노예가 돼야 합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 15:14-15>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알리시어 제자들을 단순한 노예 이상의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제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주인에게 사랑으로 온전히 헌신된 친구들이었지만 여전히 순종해야만 하는 노예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로 단순히 예수님을 존경하는 자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을 따를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것도 변덕스럽게 자신의 소속을 옮겨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노예로 부르셨습니다.
실제로 구원 얻는 믿음은 바로 이 노예의 태도에 비길 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 이 노예의 태도는 더더욱 중요한 태도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주인되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노예로서 리더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저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 이 글은 존 맥아더의 <참된 무릎꿇음>의 1장을 발췌, 각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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