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인도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성원들을 성숙시키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인도자의 올바른 모델링을 통하여 구성원들이 성숙한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실제로 배우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인도자는 스스로가 ‘구성원들보다 더 낫다’라는 우월의식 속에서 자신이 구성원들을 직접적으로 성숙시킨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보다 ‘구성원들을 성숙시키는 주체자는 예수님이시며, 나는 구성원들과 동등한 의식 속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소그룹 모임에서의 인도자는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으로서 “아직 미성숙한 구성원들을 이끄는 자”라는 개념의식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개념 속에서는 소그룹 구성원들을 수동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소그룹의 위계질서로 인해 마음과 마음을 서로 나누지 못하는 닫힌 분위기를 조성시키기가 쉽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지시, 명령, 질책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됩니다. 때문에, 현대적 의미에서의 소그룹 인도자는 구성원들과의 동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역량을 충분히 스스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그 의미가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남긴 말 속에는 현대적 개념에서의 소그룹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감탄하면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보잘 것 없는 돌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그 때,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형상은 처음부터 화강암 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단지 필요없는 부분들만 깎아냈을 뿐입니다.” 즉, 인도자는 구성원들 각자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그룹 인도자가 귀납법적인 방법으로 토의를 진행한다라는 말은 문제를 해결하는 잠재력이 원래 구성원들 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인도자는 그 문제해결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질문해 주고 자극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인도자 자신도 구성원들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구성원들로부터 자신의 잠재력이 개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인식은 소그룹을 다이내믹하게 만들기 위한 중요한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잠재력 발견을 위한 인도자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도자가 구성원들에 대하여 세밀한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이 “관심”이라는 단어는 “관리”라는 단어와 분명히 구분됩니다. 만일 소그룹의 모임목적이 개인의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한 ‘관심’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누수를 막기 위한 ‘관리’에 가깝게 된다면 그것은 속박이고 구속에 불과한 모임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인도자는 단순히 지시하고 고장난 부분을 고쳐주는 “정비공”의 위치가 아니라, 꽃처럼 가꿔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정원사”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에도 모든 소그룹에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하여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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