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83호 - 어느 여든 살 노인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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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란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요즘은 자주 듭니다.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들었다.’고 자신(?)하던 순간조차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어려서 뭘 몰라서 했던 말’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주셨고, 이 시간을 걸어가면서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인생의 지혜라는 것을 배우도록 만드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에서도 지혜를 노인과 연관시켜 이야기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존 스토트가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면서 쓴 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 중 한 명인 그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깨달은 지혜라면, 귀담아 들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살아있는 교회”(IVP)에서 “어느 여든 살 노인의 묵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적어도 자신은 세 가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첫째, 우선순위(priorities)에 대한 확신이다.

나(존 스토트)는 스물아홉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에 올 소울즈 교회의 교구목사로 임명 받았다. 그런 중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모든 것에 압도되어 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긴급한 일들이 중요한 일들을 밀어냈고,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나를 덮쳤다. 거의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석한 목회자 일일수련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조용한 하루를 가져보라”는 권고를 듣게 되었다. 너무나 상식적인 조언이었지만, 그날 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로 다가왔다. 나는 즉시 실천에 옮기기로 작정하고, 집에 돌아와서 내 일정표에 그 해의 나머지 기간 중 매월 하루를 정해 ‘조용하다’(quiet)라는 의미로 ‘Q’라고 적어놓았다.
이날이 되면, 나는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곳(물론 내 비서만은 어디로 갔는지 알았다.)으로 가서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 정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점검하고, 고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곤 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관점을 분별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은 월간 ‘Q’데이의 몫이었다. 분명 이 시간은 내 삶과 사역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책임에서 오는 부담이 가벼워졌고,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버거웠지만 압도당하지는 않았다. 월간 ‘Q’데이가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특별히 바쁠 때면 2주에 한 번 심지어 매주 한 번 ‘Q’데이를 가지게 되었다.

 둘째, 순종(obedience)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 하나는 요한복음 14장 21절이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 구절은 특별히 귀중한 약속으로 끝을 맺는다. “나를 보여 줄 것이다.” 이 약속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본질적인 갈망이자,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의 본질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약속은 조건적이다. 그분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렇다면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누군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고백하고 삶으로는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순종이야말로 사랑의 참된 시금석이며, 우리가 순종할 때 그리스도는 분명히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세 번째 확신은 겸손(humility)이다.

자만심으로 이끄는 간교한 유혹보다 더 강력하고 교활한 유혹은 없다.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특별히 이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우리는 항상 남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다. 우리의 높은 설교단은 아담의 자손 누구의 마음이라도 끌어들이는 위험한 장소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소개하신 새로운 방식의 섬김의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약학자 맨슨은 이렇게 요약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섬김은 고귀한 지위에 이르는 디딤돌이 아니다. 섬김 자체가 고귀한 것이며, 그것은 인정받을 만한 유일한 고귀함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내가 배운 한 가지는 겸손이 위선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겸손은 정직을 이르는 또 다른 단어다. 겸손은 우리 자신이 아닌 척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까?

1) 하나님께 자주 그리고 항상 감사하라. 감사는 특권이다. 감사야말로 자만심이 쉽게 자라나지 못할 토양이다.
2) 죄를 고백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라.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판하라. 하나님의 비판에 자신을 맡겨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기 반성이자 자기 고백이다.
3) 굴욕을 받아들이기로 각오하라. 굴욕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겠지만, 우리는 그만큼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굴욕에서부터 큰 굴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굴욕은 우리를 겸손히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에게로 우리를 좀더 가까이 나아갈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4) 지위에 대해 염려하지 마라. 우리 주님이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신 유일한 지위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는 지위이다.
5) 유머 감각을 지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부조리, 우리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웃어 넘기라. 진지해야 하지만 결코 근엄해지지 마라. 무엇에 대해 근엄해 지는 순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근엄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순종하게 만들고,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겸손은 자라고, 순종은 깊어지며, 삶의 우선순위는 분명해 진다. 사도 바울의 선언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열망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살아있는 교회

교회의 본질, 예배, 전도, 사역, 교제, 설교, 연보, 영향력 등 각 영역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단호한 확신, 구체적인 적용점을 제시한다. 그뿐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에 대한 소망을 지켜 온 자신의 인생 여정을 담은 내밀한 고백까지 덧붙임으로써, 이 거장은 우리 모두를 동일한 여정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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