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71호 - 프리미어리그에서 배우는 조직 경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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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가 실시한 어려움에 처한 자동차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최적임자 CEO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는 잭 웰치나 카를로스 곤 등 쟁쟁한 경영자들을 제치고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국내의 한 프로야구팀은 종목의 경계를 넘어 이들 축구 클럽의 마케팅과 고객 관리 방식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영국에 직원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축구 클럽들은 어떤 경쟁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관심을 끌고 있는 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번 리더십 네트워크에서는 프리미어리그와 그 중심에 있는 명문 축구 클럽들의 경쟁력에서 리더십, 조직 운영, 인재 관리 등 조직 경영의 시사점을 찾아봅니다. 2009년 3월 25일자 LG Business Insight에 실린 강진구 책임연구원의 “프리미어리그에서 배우는 경영 포인트”에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_ 관리와 리딩의 양수겸장 리더십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명문클럽일수록 그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팀의 색깔과 미래를 설계하는 감독은 경기 운영뿐만 아니라 선수 선발과 계약, 유소년 클럽 운영 및 훈련 과정 등 구단의 중요한 일들에 모두 관여합니다.
반면 유럽의 다른 나라 축구 감독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선수 선발과 유소년 클럽 운영은 풋볼디렉터가 책임지며 감독은 골라준 선수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훈련시키며 어떤 전술을 개발하여 전개할 지 등 경기장 안의 일들에만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팀은 ‘지구방위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감독에게는 선수 선발 권한이 없습니다.
이처럼 프리미어리그의 감독은 한 마디로 리더이면서 동시에 관리자입니다. 그런데 최근 리더십이 중요시되면서 관리자의 역할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없습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관리와 리더십을 밀림에서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한 무리의 지도자에 비유했습니다. 무리를 가로막고 있는 잡목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작업 계획을 세우고 일꾼의 교체를 지시하며 새로운 잡목 제거 기술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은 관리자의 몫입니다. 반면 수시로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전체 상황을 살핀 후 앞에 바위나 늪이 없는 지를 살피고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인도하는 것은 리더의 역할입니다. 올바른 리더십은 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목적과 지향점을 잘 공유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합니다.

 두 번째 포인트_ 장수하는 감독

프리미어리그 명문 클럽일수록 감독이 장수합니다.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23년째, 아스널의 뱅거 감독이 13년째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팀의 상징적인 존재로 존경 받고 있습니다. 반면, 스페인 라 리가의 최장수 감독은 비야레알의 페예그리니로 이제 겨우 5년일 뿐입니다.
맨유가 빠르고 탄력 있는 축구로 세계 최고 구단의 위상을 확보한 것도, 리버풀이 화려하고 끈질긴 축구로 비틀스와 함께 리버풀시의 자랑이 된 것도, 아스널이 컴퓨터같이 정확하고 아름다운 축구로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랜 시간 감독의 철학이 팀에 충분히 녹아들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성적이 좋으니까 장수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팀을 만들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퍼거슨 감독도 1986년 맨유에 부임한 후 1990년 FA컵에서 우승할 때까지 실적 저조의 비난을 감수하며 4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스널의 뱅거 감독이나 리버풀의 베니테즈 감독도 4, 5년 이상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쉽게 경질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반면,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첼시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 최고의 팀을 만들었지만 2003년 이후 벌써 다섯 번째 감독을 교체했습니다. 그럼에도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세 번째 포인트_ 두텁고 강한 스쿼드

프리미어리그가 사랑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잠시도 쉴 틈 없이 탄성이 흘러나오는 빠르고 흥미진진한 경기 진행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기 스타일은 선수들에게 강한 체력을 요구합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는 타 리그와 달리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에 소위 ‘박싱데이’ 라는 이름으로 많은 게임이 집중되는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려는 팀에게는 두터운 선수 층이 핵심 조건이 됩니다.
명문 클럽일수록 팀이 추구하는 목표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더 두터운 선수층, 즉 강한 스쿼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성적은 더 많은 재무적 성과로 직결되고 다시 스쿼드 확보의 여건 제고라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합니다. 상위권 클럽은 정규리그 외에도 리그 간 상위 클럽끼리 맞붙는 유럽클럽 대항전, FA컵 등으로 중위권 이하 팀들보다 최소 30% 이상 많은 경기를 치릅니다. 또한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국가대표 간 경기(A매치) 출전으로 인한 이동에 따른 피로 및 부상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도 두터운 스쿼드 유지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요즘과 같은 불황일수록 조직 운영을 인건비 차원에서 바라보기 쉽습니다. 꼭 필요한 인재가 있어도 비용을 따지고 망설이다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숫자적 접근은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스쿼드’를 얇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사람을 줄이는 인풋 축소를 통한 효율성 제고는 가능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발굴하는 아웃풋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단 1분을 뛴 선수도 90분을 뛴 선수와 똑 같이 높은 출전 수당을 지급합니다. 인건비 차원에서만 보면 종료 직전에 1~2분을 남기고 선수를 교체하는 감독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감독은 인건비보다 아웃풋을 중시합니다. 종료 직전에 선수를 교체하는 것은 팀에 시간을 벌어 주면서 마지막 순간 최대한의 집중력을 이끌어 내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_ 유망주를 레전드로

아스널의 뱅거 감독은 “나는 성장하는 선수들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라고 말합니다. 유망주 발굴의 귀재로 불리는 맨유의 퍼거슨 감독 역시 “나는 젊은 재능이 자라는 것을 항상 선호해 왔다”라고 감독 철학을 밝히곤 합니다. 단적인 예가 세계 최고 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C. 호날두입니다. 2003년 당시 18세의 어린 포르투갈 소년이 가진 잠재 능력을 꿰뚫어 보았던 퍼거슨의 통찰력이야말로 그를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클럽들은 외부의 어린 유망주 영입 못지않게 육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맨유의 유소년시스템은 FA유스컵에서 9차례나 우승할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습니다. 아스널이나 리버풀 역시 유소년 클럽을 통해 유망주를 발탁하고 키우는 데 공을 들입니다. 여기서 조련된 선수를 1군으로 보내 지속적으로 팀을 최고로 유지시켜 주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10여 년 넘게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웨일즈 출신 미드필더 라이언 긱스도 14살 때 맨유 유소년팀에 선발되어 지금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는 잠재력 있는 인재의 발굴이 매우 중요하다. 이미 성공한 외부 인재는 과거 경험에 얽매이거나 성과에 대한 부담으로 무리한 시도를 하기 쉽습니다. 반면 오랜 기간 조직 내에서 육성된 인재는 높은 로열티나 조직 가치관의 수용도가 높아 조직에 맞게 업무를 계획하고 처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_ 다양성과 조화가 경쟁력

프리미어리그는 유럽 대륙의 타 리그와 달리 외국인 선수 제한이 없습니다. 이러한 개방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몰려들어 경쟁을 통한 리그 업그레이드의 바탕이 됩니다. 프랑스 리그만 해도 자국 선수 보호라는 명목으로 외국 선수를 팀 당 세 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명문 클럽들은 글로벌화 수준이 높지만 구성원간 조화가 뒷받침되었기에 조직의 창조적 마찰이 가져다주는 상승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팀의 다양한 전술적 시도와 변화가 가능해지고 조직 내 파벌이나 연줄에 의한 갈등의 소지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명문 클럽일수록 조직 내 신구의 조화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젊은 선수들은 노장들을 역할모델로 삼으며 존경합니다. 맨유의 주전 선주 중에는 10대 후반에서 40이 가까운 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별, 연령, 국적 등에서 갈수록 다양성이 증가하는 사회적 트렌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직의 보편화에 따른 경력직 증가,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의 다양화, 아웃소싱의 증가 등 채용 형태가 점점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증가, 여성 인력 확대, 고령화 심화 등도 다양성을 심화시키는 요인들입니다. 그러나 조직 내 다양성 관리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는 아직 성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포인트_ 멈추지 않는 새로움의 추구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98-99시즌이 끝나자마자 기존의 포메이션에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아스널의 뱅거 감독 역시 지속되는 비판 속에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키워내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명문 클럽들은 최고에 있을 때에 오히려 변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사실 이들 명문 클럽들은 변화가 없이도 2~3년 정도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전술과 조직력이 있더라도 언젠가 상대팀이 대응책을 찾아내기 마련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 되었지만 다시 좋은 기업 또는 그 이하의 수준으로 추락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CEO의 자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성공을 거둔 기업일수록 그 성공의 바탕이 된 기존 시스템을 손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 변화에 성공하게 되면 전혀 다른 환경과 조직에서도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포인트_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

맨유를 22년째 지휘하는 퍼거슨이 강조하는 클럽 운영의 철학은“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입니다. 명문 클럽에선 아무리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팀의 색깔과 감독의 전술적 스타일에 맞지 않게 되면 주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방출됩니다. 퍼거슨 감독은“내 방식에 따르지 않으려면 떠나라(my way or highway)”라는 신념으로 스타플레이어 한두 명에 의지하지 않는 강한 맨유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반니스텔루이 등 스타플레이어도 팀워크를 해칠 위험이 있자 가차 없이 팀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지성, 플레처와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선수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퍼거슨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선수들을 칭찬함으로써 보다 더 큰 열정과 몰입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들이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 팀워크를 중시하듯 소수의 핵심인재보다 조직 전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인재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면서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핵심인재의 기준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실력만으로 핵심인재를 정의해서는 곤란합니다. 조직의 미래와 다수 구성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인재일 때 진정한 핵심인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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