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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와 같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처럼,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교회로부터 힘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교회 그 자체를 당대의 문화와 동화시키게 됩니다. 교회가 정의하는 도덕과 당대의 문화가 정의하는 도덕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질 때, 교회는 그 능력과 권위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일은 오늘날 교회 사상의 대부분을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 문화는 제자도 없는 기독교, 즉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을 따르려는 노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자도의 추구와 실천은 오직 진지한 그리스도인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와 용서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는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는 동시에, 은혜로 마비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자도 없는 기독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선포한 메시지 때문입니다. 빌 헐은 그의 책 “온전한 제자도”에서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가르침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은혜를 죄 용서에 국한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은혜의 초점을 신앙의 여정 전체보다는 회심에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단으로 걸어나가거나 손을 들어 예수님을 믿겠다고 피력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회심을 강조하는 것은 은혜에 대한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교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멈추고 10절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있기에 우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회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도 역사하시고, 강력하시며,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 내내, 거룩한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내내 풍성하게 흘러 넘치길 기대해야 합니다.
2. 칭의와 성화를 구별한다.
물론 칭의와 성화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칭의는 거듭난다는 실재를 의미하고, 성화는 예수처럼 되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하려고 그어 놓은 경계선을 아예 이 둘을 갈라놓는 장벽으로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분리 때문에 복음에 끼친 해악은 대부분 미세하며 악의가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 둘을 갈라 놓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호받는 안전한 위치를 얻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부르심에는 그분을 따르라는 요구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순간(칭의)은 마지막 지점이 아니라, 평생을 걸어가야 할 여정(성화)의 출발점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생명에서 시작하여 매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쁨으로 올곧게 전진하는 부단한 변화의 여정이 복음이라고 제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제자도는 번성하게 됩니다.
3. 일련의 사실들에 동의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자도가 없는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일련의 사실들에 동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 믿음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바울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곧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고, 이 명령은 단지 회심자만을 만들어 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즉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길에 복종할 사람들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판단 기준을 행위가 아니라 교리로 전락시켰습니다. 예배당 통로로 걸어 나와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고 기도하거나, 교리 선언문에 서명하는 의식 차원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삶, 즉 겸손과 희생과 복종과 순종의 삶입니다. 구원의 증거는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의 여부가 아니라 구원의 증거입니다.
|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추된 기독교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제자도를 회복하는, 제자도가 있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회복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질을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내면의 인격을 형성하는 믿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다시 정의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 제자도가 없는 복음을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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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제자도 - 제자도의 모든 것을 배우는
이 책은 교회에서 하고 있는 제자훈련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 편리하게 단 한 권으로 집약시켜 놓았다. 이 책을 완독하든 아니면 특정한 문제에 즉답을 발견하든, 그 어떤 경우라도 제자도의 모든 분야에 관해서 풍부한 통찰을 얻도록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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