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17호 - 소비자 중심주의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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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라는 말을 교회와 연결시키면 왠지 어색합니다. ‘소비자 중심주의’란 말은 스타벅스 운영에는 중요할지 몰라도 교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징징거림을 받아 주면서 예수님이라는 상품을 파는 하나의 기업이라는 개념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소비자 심리는 예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멉니다. 소비자 심리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자동판매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소명은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며,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기호를 맞추는 21세기 기업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비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도 소비자들입니다.

 코카콜라의 경쟁상대는 펩시콜라?

80년대 초 코카콜라는 미국 음료 시장의 35%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코카콜라 직원들은 콜라 시장이 이미 성숙한 시장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0.1%의 시장 점유율을 위해 출혈을 감수하곤 했습니다. 고이주에타 회장은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위 임원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이 마시는 액체가 평균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64온스였습니다. 다시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코카콜라가 평균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2온스였습니다. 끝으로 그는 코카콜라의 위 점유율(Share of Stomach)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위 점유율로 보면 3%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1인당 2온스의 일일판매량도 어마어마한 것인데, 사고의 축을 바꿔 97%의 남아 있는 시장을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코카콜라 직원들은 자신들의 적이 펩시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펩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싸움에 돈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의 적은 커피, 우유 그리고 물이었습니다. 이것이 코카콜라를 최고의 시장가치를 지닌 회사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경쟁상대는 다른 교회?

교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 경쟁 상대가 누구이며, 그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서 어떻게 소비자를 당신 교회로 이끌어 올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사람들을 주일 아침에 예배에 참석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우리의 경쟁상대는 다른 교회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목사든, 평신도 지도자이든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를 이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위를 차지하려고 그 교회가 하는 일을 주시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결국 우리와 같은 편입니다. 그 교회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이유로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우리는 그들과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일 아침, 당신 교회의 최고의 경쟁 상대가 다른 교회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최고의 경쟁상대 이겠습니까? 당신의 최대 경쟁상대로서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은 지난 몇 주 동안 사람들이 이용했던 식당들, 백화점, 골프장, 놀이공원의 서비스와 거기서의 좋은 경험들입니다.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삼성의료원 등에서는 고객들을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주중에 그런 장소에서 감탄할 만한 경험을 할 때 이미 그들과의 경쟁은 시작됩니다. 이처럼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서 탁월하고 정성어린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주요 경쟁 상대는 따뜻하고 편안한 침대라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서의 경험은 그들을 침대에서 끌어내 교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에 대해 파악하라

소비자 중심주의를 교회와 연결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와!”하는 감동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워 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 사람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귀하게 대우받는다고 느낄 때, 교회는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과 연결될 수 있는,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언급했던 그런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적당한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상가에 가서 쇼핑을 하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은행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모두 적당한 수준의 것들입니다. 적당하다는 것은 나쁜 수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적당한 수준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우리의 필요를 해결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평범한 것이며,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적당한 수준 이상의 기대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가끔은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을 때는 적당한 것을 기대할 때와는 다른 기준을 사용합니다.

 적당한 수준을 넘어 감동의 수준으로

당신 입에서 “와!”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대접을 받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당신이 “와!”하고 감탄하게 될 때는 언제입니까? 당신이 감탄했던 경험을 두세 가지 떠올려 보십시오. 탁월한 서비스로 당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절할 만큼 좋은 질로 당신을 놀라게 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러한 경험을 되새길 때마다 마음에 함께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감동의 수준으로 가려면 오감이 모두 동원되어야 합니다. 실내장식, 음악, 섬기는 사람들의 태도, 내용, 섬김의 방식, ....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느냐 입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감탄하게 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한 주간, 교회가 경쟁하고 있는 이마트나 삼성의료원보다 더 성도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가야 할지 묵상해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감동이 있는 교회는 첫인상부터 다르다”(마크 L. 왈츠 저, 국제제자훈련원)의 1장 “소비자를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감동이 있는 교회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당신의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의 교회를 판단한다. 그레인저 커뮤니티 교회에서 ‘첫인상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마크 왈츠는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위해 그가 실제로 적용하고 있는 놀라운 전략들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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