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은혜가 필요하다
고든 맥도날드는 “세상도 교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집을 짓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이 딱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필립 얀시도 그의 책에서 “불교의 팔정도, 힌두교의 업보교리, 유대교의 언약, 모슬렘의 경전은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이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즉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은혜가 기독교의 핵심이지만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해본다면 아마 교회와 은혜를 연관짓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교회의 모습은 바로 율법과 정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포스트모던 세대를 향해 우리의 소그룹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할 시기입니다.
2. ‘우리 VS 그들’ 이라는 대결구도에서 벗어나라
교회에 새로 온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소그룹에서 처음 받는 느낌이 “나는 네 편이야”라는 용납 대신에 많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우리 대 그들” 이라는 대결구도를 느낀다고 합니다. 소그룹 모임 중에서도 별 생각없이 ‘우리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소그룹에서 늘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모든 새가족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교회와 소그룹의 분위기를 먼저 만난다는 것입니다. ‘나도 당신과 동일하다’는 용납의 메시지를 받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3.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아픔은 있다
사람의 눈에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을 찾고 있는 슬픈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없이 평안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기도문에서 “주님, 한줌 흙에 지나지 않는 피조물이오나 감히 입술을 열어 당신에게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받아 줄 수 있는 은혜의 분위기 속에서만 깊은 마음의 상처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그룹이 피상적인 나눔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모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영적인 용납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없는 평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4. 용납이지 동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받아주고 용납할 때 위험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받아주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용납이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믿음이나 행위까지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받아준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된 행위도 봐주고 죄악도 눈감아 준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6장에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받아 준다고 해서 그들의 선택, 신념,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성가대로 지원한 한 자매가 동거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음악 부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의 인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일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받아 주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 단계 ‘하지만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로 가기 위한 용납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