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06호 -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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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종교 신자, 동성애자, 마약중독자, 미혼모, 동거 커플, 무신론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미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닿을 수도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불완전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를 통해 포스트모던 세대에 다가가시는 신비롭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는 이들에 대해 준비되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세대의 문화에 다가가면,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다른 질문보다 많이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세대에게 일종의 관용 리트머스 시험 질문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이 난감한 장벽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 모든 종교가 틀렸다면, 왜 기독교만 유일한 길인가?
  • 예수님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 모든 유대인과 모슬렘과 불교 신자들은 지옥에 가는가?
  • 다른 종교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사랑하시는가?
  • 왜 예수밖에 없는가? 부처와 다른 신은 어떤가?
  • 모든 종교는 똑같지 않은가?
  • 기독교를 믿는 것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은 교만한 것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전 세계 모든 곳에 있는 백성들에게 베푼 놀라운 관용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돕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실제적 관심사이자 의제들입니다. 포스트크리스천 사회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문화를 창조하려면 이 질문 밑에 깔린 리트머스 시험 문제를 예상하고 답변해야 합니다. 리더가 이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게 되면, 그들의 오해를 풀어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 밑에 깔린 실제적인 질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존 버크 저, 윤관희 역, 국제제자훈련원)의 제7장 “다른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요약 · 정리하며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교적 교만은 아닌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품고 있는 중요한 관심사가 종교적 교만과 오만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 밑에 깔린 진짜 질문은 “당신만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겁니까?”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교만이 많은 종교적 문제점을 초래했다고 판단합니다. 사실 그건 옳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질문 밑에 깔린 진짜 질문을 예상하고 공개적으로 표현하면, 오히려 듣는 것조차 싫어하던 사람들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당신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고, 그들이 당신의 답변을 듣고 싶어 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관용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더라도, 어디까지가 좋은지 선을 그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맛, 그리고 기호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관용은 좋은 것입니다. 나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심지어 신념도 관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진리라고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용을 베풀지만, 동시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종교적 사상은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범주입니다. “나는 모하메드를 믿는다” 또는 “나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나는 빨간색이 좋아”나 “나는 검정색이 좋아”라는 말과 같은 부류의 진술이 아닙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란 빨간색이나 검은색처럼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기호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유한하고 잘못되기 쉬운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셨다면, 사람들 말이 옳습니다. 즉, 기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상당수의 주관적인 의견들은 쑥 들어가고 맙니다.
우리는 진리는 하나님 밖에 없으며 진리는 두려움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기억하는 동시에,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리더라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며 종교적 교만이 과거의 문제들을 실제로 초래했음을 겸손히 인정할 때, 사람들은 처음 가졌던 방어적 태도를 내려놓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리더가 투영하는 어조와 태도는 말로 하는 설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교만에 대한 질문에 답변이 되어 버립니다. 질문에 대한 논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상대방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논쟁에서 이기려 하는 것을 종교적 교만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신가?”의 문제라고 바라보도록 도와주고,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면, 방어 자세는 수그러듭니다.

세상의 종교에는 진리가 있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가 결국 똑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도한 관용의 시대에 살고 있는 신세대 교회의 리더는 세상 종교에 관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종교에는 유사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기독교와의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함으로써 편협함과 옹졸함에 대한 비난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관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아테네에서 기다리다가,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와 모든 헬라신을 숭배하기 위해 세워진 수백 개의 우상을 보고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열심이 충만했던 바울은 “너희가 우상을 숭배하다니 모두 잘못하고 있구나”라고 옳은 소리를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리라.”(행26:17하-18상) 바울은 그들의 눈을 뜨게 하려면, 진리의 하나님의 빛이 이미 그들 중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빛의 흔적을 찾을 때까지 먼저 “걸어 다니면서 모든 우상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엄청난 관용과 자제력을 보이며 그는 아테네인을 격려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2-23)
하나님이 항상 모든 문화 가운데서 은밀히 역사하셨고, 잘못된 신화적 종교 이면에도 진리 되신 하나님 한 분을 비추는 빛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인정했습니다. 그 다음 바울은 (마치 우리가 오늘날의 노래, 영화, 예술 속에서 영적인 관계성을 지적하듯)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그들의 시인들을 인용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 17:24-28)
바울은 시인들의 말 속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가리키는 진리를 확인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모든 종교 행위가 부분적으로는 무지의 소산이었지만, 지금은 예수 안에서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구도자의 종교심 속에 담긴 진리의 흔적을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선교학적 원리를 적용하듯, 그런 태도는 예수님을 이해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합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깨닫도록, 세상 종교의 한계점을 지적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어떻게 공평한 주장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이 질문은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시험하는 모든 질문 밑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공평성에 대한 이 질문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구도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은 교만하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린 채, 실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진실로 공평하셨다는 진리를 놓쳐 버릴 것입니다. 종종 진짜 질문의 요체는 공평성에 대한 것인데도,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에만 몰두한다면 토론에는 이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잃어버릴 것입니다. 한 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 대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정말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안다고 반응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도록 허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나누는『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국제제자훈련원)의 저자 존 버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대가 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전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세상의 문화 속으로 침투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문화에 젖어 있던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바라기는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 모두가 포스트모던시대의 교회에 대해 한번 고민하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이 책은 여러 가치관을 수용하는 포스트크리스천과 교회, 그리고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다섯 가지 장벽, 즉 신세대와의 갈등, 신뢰, 관용, 진리, 상한 심령, 고독과의 갈등을 해체하는 법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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