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보급률 세계 1위, 인터넷 접속 시간 세계 1위, 사라져 가는 공중전화, 수십 통씩 날아드는 이메일, 각종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은 말의 편린들.
요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들입니다. 휴대폰이 생기고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정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들이 우리의 삶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개봉되었던 헐리웃 영화 ‘네트(NET)‘가 예언적으로 묘사했던 세계가 이리도 빨리 현실화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물에 갇힌 인생들
현대인의 실존을 ‘네트워크 속에 갇힌 인간’이라고 정의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던 우리의 존재는 어김없이 네트워크의 감시체계 속에서 하나의 점(데이터)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기술사회로의 진입속도가 빨라지면서 동시에 이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목소리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출판시장만 살펴보아도 이런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뉴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문명비평가, 매체생태학자)이 지은 ‘테크노폴리’(민음사)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책에서 저자는 도덕적, 지적 나침반을 상실한 채 한낱 도구에 불과한 기술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테크노폴리(기술독재)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테크노폴리는 한 마디로 전체주의적 기술주의 문화입니다. 이러한 양상들은 기술혁명의 초기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기술독점의 수혜자들은 변화의 긍정적 측면만을 소리 높여 선전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해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축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리하도록 자기들끼리 결탁해 왔습니다. 사태가 이만큼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기술사회에 대한 반성은 많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점이 이 책이 쓰여진 이유이고 또한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제조업 노동자, 채소가게 주인, 교사, 음악가 등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기술은 과연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요? 기술도착자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면 더 꼼꼼하게 가계부를 정리할 수 있고, 요리법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합리적인 쇼핑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반면 보통 사람들의 개인적 삶이 강력한 힘을 가진 기관들에 쉽게 노출되고 추적되고 통제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또는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단순히 데이터화되거나 숫자로 전락되어 광고대행사와 정치집단의 만만한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쓰레기 같은 광고 메일을 정리하는데 사용해야 하는 시간은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기술이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효율적이며, 누구에게 이익을 주고, 그 대가는 누가 치러야 하는가를 되묻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술을 윤리적으로 통제하기는커녕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에 급급하다면, 우리는 분명 우리 "자신이 만든 도구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테크노폴리’라는 징후적 문화현상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저자는 테크노폴리 현상이 상당히 미국적 환경 속에서 배양되었음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치유로서의 교육이란 역사와 전통을 재구성하고 도덕적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이른바 '인간' 교육을 의미합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사람이 사람답게만 선다면 기술이 제아무리 활개를 친다할지라도 사람의 손에 들린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 시작과 해결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몫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회의 역할을 보게됩니다. 테크노피아 혹은 테크로폴리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를 살릴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절동안 교회는 ‘사람을 사람답게 거듭나게 하는 것은 복음의 능력 밖에는 없다.’는 굳은 확신속에서 사역해 왔습니다. 기술이 神(신)이 되어버린 사회일수록 복음의 필요성과 역할은 더욱 극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만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시 절대 진리를 찾아서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병리적 현상들을 치유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기술독재'와 같은 거인과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포스터모더니즘'이란 단어가 세상을 가득 채우던 몇 해전에는 교회는 ‘세계관 학습’에 열의를 올렸습니다. 서로간의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포스터모던'이란 단어가 시들해지면서 동시에 교회에서도 세계관 학습 역시 풀이 죽었습니다. 포스트모던의 고도의 전술에 보기좋게 패배한 꼴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떤 사회적 이슈가 제기될 때 가장 조용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저 각자의 삶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교회나 세상에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군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옳고 그름의 의미가 아니라 개성의 차이로만 인식되는 것이 요즘입니다. '포스트모던적 사고방식'이라는 거인의 영향력이 교회 내부에까지 미치면서부터 일어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머리를 채우기 위한 세계관 학습이 아니라 손발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삶의 체계를 통째로 변혁시키기 위한 세계관 학습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으로 거듭난 인생, 복음으로 거듭난 사회를 향한 뜨거운 바람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술독재'를 비롯한 세상의 거인들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는 준비된 제자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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