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678호 - 평신도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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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15년 3월 16일

678호

평신도 신학

오늘날 전 세계의 교계가 ‘평신도 신학’이라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이 평신도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평신도가 이해 못하는 라틴어로 말씀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모국어로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평신도의 적극적인 헌신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의 사역과 선교에서 평신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또한 평신도의 참여로 이전보다 다양한 사역이 개발되었고, 거듭 발전해왔습니다. 평신도가 신학적 체계를 형성하는데 참여하고 삶에 연관된 신학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신학이 전공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닌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상의 언어와 내용으로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서양 신학은 평신도의 신학적 지위를 교회의 일부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논의를 하던 중에 부차적인 주제로 다루거나,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교회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평신도가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주목받게 되었고, 평신도의 위상과 중요성, 역할과 책임에 관해 신학적으로 정의하려는 노력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활발하게 이어져왔습니다. 그에 따라 평신도에게 주님의 일에 더욱 헌신하도록 권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처럼 평신도에 대한 관심은 교회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오늘의 교회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신도의 지위와 의미에 대해 교회의 본질과 소명까지 고찰하면서 신학적인 토대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책은 아직까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신도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평신도의 신학’입니다. 이 둘은 반드시 구별해야 하는 개념입니다. 평신도를 위한 신학이란,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어떤 신학적 정보가 필요하며 어느 정도의 분량이 적절한지 고민하여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신도의 신학과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신도를 위한 신학은 교회가 평신도 신학의 중요성을 포착해서 영적 전략으로 삼을 때 생기는 결과물 중 하나일 뿐입니다.

평신도의 신학은 평신도 스스로가 사회적인 문제와 인생의 고민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고찰하고 이러한 결과물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태까지는 전공자들에 의해 주도된 신학 영역에서 평신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즉, 평신도를 신학의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눈에는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평신도가 복음전도와 선교에 크게 공헌하는 것을 보더라도, 평신도 신학은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주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평신도 신학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실험, 탐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누구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집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각 사람의 삶은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다양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 평신도가 말씀을 묵상하고 신학을 세워나가는 일에 참여하도록 돕는 일이 목회자들에게 과업으로 주어졌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주님의 대위임령을 완수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 이 글은 “평신도 신학”(헨드릭 크래머, 아바서원)의 내용을 인용,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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