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은 겸손하게 한다
‘불확실성’은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욥기야말로 의문과 의심의 한마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의문에 찬 사람은 주인공 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욥 19:6) 그는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에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욥 6:4) 니체의 철학이 등장하기 오래 전에 욥은 이미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비난했습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욥 30:20)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뜻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매우 확고부동했으며 욥에게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했고 그의 의심을 풀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은 욥의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에게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욥의 정직한 회의와 의심 속에는 욥의 친구들이 보인 믿음보다 더 확고한 믿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불확실성은 진리를 갈망하게 한다
불확실성이 축복인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듯이 의심은 진리를 찾게 만듭니다. 의심이 생기면 그냥 의심을 억눌러서 해결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식의 밑바닥에 꾹꾹 처박아 두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가 쓴 책들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네, 행여 그런 책 때문에 내 신앙이 흔들릴까 봐 겁이 나거든.” 나는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서 그런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실제로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로 옳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억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스윈번 교수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믿겠다고 결정할 수 없다. 믿음이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믿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독이 되고 위험한 짓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나는 배울 것이다. 공부할 것이다. 성장할 것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의지만으로 믿음이 생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의심은 믿음을 빛나게 한다
믿음은 의심이 생길 때, 확실히 알 길이 없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믿음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이런 의심을 하고 있다니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봐.’ 그러나 의심이 들고 확실하지 않을 때가 정말로 믿음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의심이 없어지면 믿음도 필요 없습니다.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믿음을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감탄이 나오듯 충성스런 사람을 보면 신뢰하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알아 갈수록 그 사람을 향한 신뢰가 깊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의지로 신뢰를 짜내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뢰는 선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