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난, 거절, 반대,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가져다 주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따라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불가피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경향을 의미한다.
시카고에 위치한 무디신학교 학장으로 섬기고 있는 조셉 M. 스토웰은 그의 책 “주님을 따르라”(국제제자훈련원)에서 십자가를 지는 삶과 관련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네 가지 기본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십자가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꺼이 져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강제로, 억지로, 협박에 의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특권으로서 십자가를 지기를 바라신다. 십자가를 지는 삶에 초청 받을 때, 우리에게는 분명 선택의 자유가 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 존재를 걸만한 가치가 있다는 분이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분이기에 우리는 “무엇이든지”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기꺼이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2. 십자가를 지는 것은 경향성이다.
온전히 헌신된 제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과정에 어느 정도의 불편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어려움이 닥칠 때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궤도로부터 탈선하지 않을 수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님, 나를 어디로든 인도해 주십시오. 주님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 어떤 짐이라도 지겠습니다. 지탱할 수 있는 힘만 주십시오. 나의 마음,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방해하는 모든 끈을 제거해 주십시오.”
3. 십자가를 지는 삶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누가복음 14장 27절에 나오는 “자기 십자가”라는 표현에서 자기라는 대명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가 지는 십자가는 당신이 지는 십자가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와도 다를 것이다. 히틀러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편에 섰기에 온갖 고통을 당했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기록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자기 몫의 십자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지정하신 십자가가 있다. 각자는 자기에게 할당된 몫의 고통과 거절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분량이 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고통을 받을 가치가 생각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순교의 은혜를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시험밖에는 주시지 않는다.”
4. 십자가를 지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
우리의 행위와 태도는 그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원천이 된다. 우리가 세상 문화에 거스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세상은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삶으로 표현되는 대안은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책망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책망에 세상은 회개로 반응하지 않고, 거절하고 중상모략하고 조롱하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십자가 없이도 제자의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신앙관이라고 할 수 있다. 본회퍼는 또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적인 연합의 결과물이다. 고통이 닥칠 때,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죽어야 할 생명과 분리될 수 없는 고통이 아니며,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