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란 단어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좋은 이미지를 주기도 하고 나쁜 이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의 탁월한 문학자 중 한 분인 이상은 씨는 자존심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자존심이란 결코 배타가 아니다. 또한 교만도 아니다. 다만 자기 확립이다. 자기 강조다. 위대한 개인, 위대한 민족이 필경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이 자존심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왕과 총독, 그리고 많은 고관들 앞에서 쇠사슬에 묶인 두 팔을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사도행전 26:29) 상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은 왕이고, 한 사람은 죄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당당히 나처럼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바울과 같은 자존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세상의 부귀 영화를 보는 시각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황제인 루이 16세가 감옥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죽을 날을 기다리며 손톱이 뭉개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가 벽에다 남긴 한 마디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조금이나마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니며 부귀 영화가 한낱 허깨비와 같다는 것을 압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귀 영화를 기뻐해서 스스로 그 속으로 뛰어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부귀 영화가 얼마나 헛되고,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헛된 것을 손에 쥐려고 아옹다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만이 바울처럼 예수를 모른 채 헛된 것에 속아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을 보면 상대방의 신분이 무엇이든간에 바울처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도 나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둘째, 우리는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먹고 마시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왕과 견줄 만한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에 비해 바울은 떡 한 조각으로 겨우 연명하는 죄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마음의 평강과 세상 사람이 모르는 희락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그것입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 사람이 모르는 은혜, 곧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골고루 받았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내일의 염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함과 심령의 평안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일은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한 자유함과 평안과 기쁨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긍지를 가지고 그들에게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내세에 누릴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영생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왕이 되어 한 평생을 희희낙낙하면서 살았다 할지라도 영원히 사는 생명을 잃어버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반문으로, 거지 나사로와 같은 인생을 살더라도 후회할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은 너무 소중한 것이라 세상의 다른 것은 다 포기할지라도 이것만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아그립바 왕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았어도, 영원히 후회하는 패배자가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잠시 죄수로 살다 내세에서 영원히 왕자로 사는 것은 세상에서 잠시 왕으로 살다 내세에서 영원히 죄수로 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이었기에 바울은 자신의 결박 당한 것 외에는 그들 모두가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제 바울과 같은 자존심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 살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은 아그립바와 같은 세상의 왕을 부러워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를 모신 당신 자신에 대한 모역입니다. 또 쇠사슬을 차고 외로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초라하게 보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딘가 잘못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도 인생을 향해서 비굴하게 구걸하는 자와 세상 부귀 영화를 하늘의 영광보다 부러워하는 자가 있다면 성령께서 그 능력으로 치료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의와 평화,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증거하던 바울의 자존심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옥한흠 목사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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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존심
제자훈련 과외필독서입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신분의식과 자존심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옥한흠 목사의 설교모임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현대사회 속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물어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불의 앞에 무릎꿇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손으로 쓰임받을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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