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불가해한 것 안에 불가사의로 싸인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렇습니다. 지난 한해 여러분이 맡아 이끌어온 소그룹사역을 돌이켜볼 때도, 윈스턴 처칠의 말이 진정으로 동의가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소그룹 구성원이 어찌 그리 변하지 않는 것인지?” “하나님께 헌신하는 소그룹 구성원의 삶에 어찌 그리 풍파가 그치지 않는 것인지?”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한 해 소그룹 사역을 돌아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찰스 스윈돌 목사의 책 「하나님의 뜻에 담긴 신비, 그 아름다움」(디모데)의 제 12장에 소개되어있는 내용을 정리해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괜찮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소그룹 구성원들이 지난해 동안 겪은 그런 힘든 일을 겪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소그룹 구성원들은 그것보다는 좀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고는 현명하고, 논리적이며, 수평적인 사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사고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고 그분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계획이 우리를 안락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보다 그리스도와 같도록,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인간적으로 의미가 통하는 것을 의도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적으로 완전히 비논리적일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대개 그분의 뜻을 전혀 뜻밖의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그 방법들은 의외의 뒤틀림과 전환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중 아무도 미래를 추측할 수 없는 반면에, 하나님은 무언가 큰 일을 계획하신다는 것입니다. 평강도 바로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우리가 안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덜 쓰고 그분께 순종하는 데 더 시간을 쓰십시오. 그분의 뜻을 따르다가 당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봉착하면, 그것을 설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마십시오. 그냥 있는 대로 말하십시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내 능력을 넘어섭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아시니까요.” 이것이 우리가 가진 대답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이해의 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불가사의한(우리가 보기에 불가사의한) 계획을 행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 불가사의는 인간적 논리를 무시합니다. 이 모든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를 지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잔인하고 불공평하고 까다로운 신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다만 밝은 눈으로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얼마간 배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것을 저에게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 주님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모험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신뢰할 만한 분이시므로, 그것은 최소한의 모험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우리는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심을 두는 만큼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과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우리는 지난 한해 동안 우리가 걱정한 만큼 결코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질 수 없는 그 엄청난 짐을 지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우리의 자취를 감추려고 변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야 어찌되든,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였을 것입니다. 완전히 진실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우리를 위한 전반적인 하나님의 뜻은 지리 문제가 아닙니다(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직업 문제가 아닙니다(내가 어디서 일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정확히 어떤 차를 몰아야 하는가가 아닙니다(당신은 어떤 색깔을 선호하는가?). 하나님의 뜻은 으뜸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데 관심을 둡니다. 그것은 모두 정금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 여행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를 그분의 사랑스런 자녀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생이 걸리는 과업입니다.
이번 겨울 방학기간동안 이제 “나는 모릅니다.” “나는 신뢰할 것입니다.” “나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모두를 맡깁니다.”와 같은 말들을 연습하십시오. 왜냐하면 인생이란 연극의 주연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시작이시며, 그분이 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완전한 계획에 동참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경험하게 될 불가사의를 기대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소원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이란 점입니다. 주님. 제가 스스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또 제 마음대로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무엇이 나와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최선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것을 아십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주님이 다스리시며 주님이 이것을-이것까지도-사용하셔서 저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시는 사실에 언제나 민감하게 하옵소서. 저는 무엇보다 그것을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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