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가 있고 6주 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신도수가 만 명이나 되는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는 일리노이 주의 발라 파크에 있는 한 이슬람 사원에서 루이스 파라칸과 이만 월러스 딘 모하메드와 만났습니다. 당시 새로 출간된 그의 자서전 My Journey(나의 여정)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 순회 중이던 슐러 목사는 “나는 소망의 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행사는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와 시크교도가 함께 참석한 종교 간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날 일간신문 《시카고 트리뷴》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슐러 목사가 처음으로 이슬람 단체와 상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모하메드가 뉴저지 주 미국 이슬람교도 전체 대회의 개막 설교자로 그를 초청한 때이다. 그리고 1999년에는 시리아 최고의 이슬람교 율법학자로부터 다마스쿠스에와서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최고의 이슬람 율법학자를 만났을 때...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슐러 목사는 자서전에서 쓰고 있다. ... “‘나에게 모든 해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당신을 개종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은 아니다. 그런 방식 때문에 911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 태도 때문에 극단주의자들이 생겨난다”고 슐러 목사는 말했다. 911테러 이후 강조점은 개종에서 “상처와 희망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저 도와주려는 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슐러 목사는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성직자 로버트 슐러 목사는 911테러에 대해 책임이 기독교가 힘쓰고 있는 복음주의와 선교사역들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임스 데이브슨 헌터의 탁월한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에 재학하는 60%의 학생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 구원에 필요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똑같이 진실하다고 주장합니다. 다원주의는 이 세상이 가장 달콤한 향내를 피우는 꽃을 따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종교의 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진짜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척도는 그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입니다. 모든 종교가 똑같이 진실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절대주의적이고 광신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원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오늘은 켄트 휴즈의 책 “구별하라” (국제제자훈련원) pp. 139-157에 나와 있는 “다원주의의 함정”이라는 부분을 정리하며 함께 생각을 나누기 원합니다.
건강한 다원주의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다원주의란 말은 더러운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에서 오는 음악, 리듬, 춤, 건축, 미술, 색의 독특한 빛, 스타일, 문학, 관습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 경이로운 경력과 특징과 빛깔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미 창조하셨고 미래에 종말 세계에서처럼 지금도 그것들을 축복하십니다(계 7:9 참고). 또한 다원주의적 관용이 지니고 있는 미덕이 있습니다. 다원주의적 사회의 관용은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과 이해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독특함을 찬양하고 보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관용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기 종교를 따를 수 있는 권리라든지 아니면 종교를 전혀 갖지 않을 권리를 보호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관용이 의미하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들의 사상이나 믿음을 그저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실한 것처럼 우리가 받아들이는 지적인 관대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원주의적 관용이란 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설득하기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한 다원주의 “모든 길이 하나님에게로 통한다”는 사고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독교나 비교 종교 또는 비교 논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닙니다.
- 이 세상의 다양한 종교들은 똑같은 보편적인 본질,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모순된 개념들을 숭배한다.
- 이 세상의 종교들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는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을 인간의 문제로 생각한다. 반면 힌두교와 불교는 인간의 문제를 “차라리 실재의 본질과 관련하여 심원한 무지, 맹목 또는 혼란”이라고 간주한다.
- 모든 종교는 구원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들과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들이 진실로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적 교만이다.
- 이 세상의 종교들은 어떤 것이 선한 행위인가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원 매춘, 아즈텍 문명의 인간 희생제물, 힌두교의 미망인 화장 등을 생각해 보라.)
기독교의 배타주의 성경과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배타적입니다. 출애굽이라는 기적의 구원이 있은 후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상기하면서 두 번씩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배타성을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5). 그리고 또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라고 요구합니다(39절). 후에 선지자 이사야도 바로 이 구절을 이용하여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다섯 번이나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사 45:5, 6, 18, 21, 22)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서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한 영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제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예수님께서도 개인적으로 자신을 이와 같이 제시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7-9).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입술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와 같이 배타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어떤 식으로 이 말씀을 해석한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한 가지만 의미합니다. 구원에는 오로지 한 가지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자신과 대적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무엇 때문에 가능한가? 왜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 입니까? 이 대답의 핵심은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타락했고 우리가 얼마나 철저한 죄인인가에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이 세상의 종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부분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는 그들이 정의 내리는 대로 행위에 구원의 근거를 둡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단코 그런 인간의 힘에 의한 구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히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다원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야 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말, 우리의 어조는 진정으로 사랑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적으로 공정하여 비차별적이고 상대주의적이고 관용할 줄 모르는 다원주의 때문에 기가 꺾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다원주의는 진리가 상대적이고 모든 종교가 똑같이 진실하고 유효하며, 우리 이웃이 원하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웃에게 그가 틀렸다고 말하기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고정된 방식의 다원주의에서 벗어나 세상과 구별해야 하고,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며, 아무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갈 자가 없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라는 소명을 받은 우리는 다른 모든 길이 잘못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진정으로 믿는 교회야말로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교회라는 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진실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며, 영혼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들이는 한 주간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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