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 2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올 한해도 열심히 달려오셨을 줄 압니다. 오늘은 토미 테니가 지은 “갈망하는 자의 기도”(두란노)에 나오는 비움에 대한 부분을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연말연시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나누고자합니다.
미국인들은 매년 평균 9백만 단어를 말한다고 하는데 그 중 5백만 단어는 ‘나’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시대정신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나 자신만이 부각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차지하는 것을 때때로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사탄의 첫 시도는 만유의 창조주로부터 독립한다는 교만에 기초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독립의 우매함은 아담과 하와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고 힘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단 한번도 숨쉴 수 없고 단 한 가지도 생각할 수 없으며 단 한 푼도 벌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하는 모두 거만이요 반항입니다. 반항의 뿌리는 내 기준으로 ‘커지려는’ 욕망에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독립심과 반항심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법과 치료법은 포기의 훈련입니다.
우리 삶에서 ‘비워야 할’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주님이 당신 삶에 거룩한 것들을 더 많이 심어 주시기 원한다면 그 분이 주시지 않은 것을 모두 비워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청와대 오찬에 참석하는 날,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에 불량 식품을 잔뜩 쥐고, 마음에는 시시한 것들을 가득 품고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리고서는 그분이 최선의 것으로 복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옆방에는 포르노의 영, 지하실에는 용서하지 않는 영, 위층에는 교만과 불법의 영을 두고 동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두시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모조리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비움’은 동양 종교의 ‘비움’과는 다릅니다.
모든 동양 종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비움’의 행위는 인간 영혼에서 온갖 잡념, 애착, 애정, 열정, 생각, 감정을 비워 열반-완전한 공과 우주와의 합일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상태-에 이르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그들은 자연이(그리고 영적 세계가) 진공상태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우주는 빈 공간이 아닙니다. 두개의 라이벌(그러나 대등하지 않은) 나라가 이 우주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비워진 인간 영혼은 바알세붑의 노천 시장에 걸린 신선한 고깃덩이 같아서 지옥의 온갖 파리가 꼬이게 되어있습니다(참고/ 눅 11:24-26).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지기 위해 영혼과 마음에 있는 것들을 비웁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비움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빈자리를 거룩하고 온전한 것으로 채우도록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어떤 그리스도인도 절대 자신을 ‘비워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비움의 진정한 중요성은 하나님의 채우심에 있습니다
빈 그릇을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난 인간의 삶은 예외 없이 항상 변했습니다. 그런 만남에는 거의 언제나 대가가 따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유지하고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더 받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비워야 더 좋은 것을 채워 주십니다. 40세가 되어 제 힘으로 운명을 이루려 할 때만 해도 모세는 ‘말에 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말더듬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달변’이 실은 ‘영적 말더듬’일 때가 있습니다. 즉 그것은 전능자와의 그리고 전능자를 위한 참된 의사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의탁하면 그분 앞에서 우리의 장점 자체가 오히려 결점이 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약점은 그분 손안에서 완벽한 장점이 됩니다(참고/고후 12:7-8). 장차 당신이 받을 기름의 양은 당신의 비움으로만 결정됩니다. 당신의 빈 그릇을 보이기를 겁내지 마십시오. 빈 그릇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열왕기하 4장에 등장하는 과부 이야기를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빈 그릇을 보이기를 겁내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인간 영혼의 비워진 공간을 채울 가치가 있는 단 하나뿐인 진리와 구주를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은 인간의 입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비움과 채움’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야 말로 ‘비움’과 ‘채움’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께 의존하십시오.
비우는 기도는 우리를 신실하신 하나님께 의존하게 하고, 인간의 육신과 영혼에 대한 자신감에서 우리를 건집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교향악단 지휘자였습니다. 그의 특기는 베토벤 작품이었습니다. 어느날 토스카니니는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을 지휘했는데 지휘하기 매우 어려운 곡인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순서에 있었습니다 그 연주가 어찌나 웅장하고 감동적이었는지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의 기립 박수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토스카니니는 거듭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가 악단 쪽으로 돌아서자 단원들도 인사했습니다.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는 계속됐습니다. 단원들도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마침내 토스카니니는 청중 쪽으로 등을 향하여 서서 단원들에게만 말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두 베토벤 덕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서, 우리 모두다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 덕입니다.” 이 고백과 더불어 남은 두 주간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셔서 밝아오는 2006년에는 하나님을 더 풍성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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