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그리스도인 치고서 전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신념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소그룹 내에서도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만들어 전도에 대한 요청을 피해가는 구성원들을 많이 보게됩니다. 그들의 핑계거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핑계 1: “저는 초신자예요.”
소그룸 안에 “나는 예수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최상의 적격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불신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신선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요한복음 4장)을 보십시오. 그녀가 마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구원받은 지 불과 몇 분되지도 않아서였습니다. 그 여인은 그녀가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들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혹, 이제 막 예수를 믿은 초신자가 불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불꽃을 죽여버린 ‘푹 젖은 담요’같은 그리스도인들과 너무 많이 어울리지 않도록 해주어야합니다. 그들의 죽어버린 열정이 초신자의 불꽃을 사그라들게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아직도 불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해주어야합니다.
전도에 대한 핑계 2 : “저는 성경을 잘 몰라요.”
한 사람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성경에 달통한 성경 박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죄에 빠졌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다 알 수 있을 때까지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소방수들은 불이 났다는 경보가 울리는 것을 기다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경보기가 울리면 곧바로 출동합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2천 여년 전에 벌써 자신의 증인들을 위해 화재 경보기를 울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리스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소방수들과 우리의 ‘신학적인 소방 기구들’을 닦으면서 한가로이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경보기는 이미 울려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치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는 곰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아주 잘 길들여져 가축처럼 되어버린 곰은 관중석에서 맹렬한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와 자신을 향해서 짖기만 해도 겁에 질려 떱니다. 그 곰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즐거움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입에는 망이 씌워졌으며 발톱은 빠져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영적으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도록 길들여진 ‘서커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영적 전쟁터에서 경험을 쌓으며, 야성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재생산이 없다면, 제자 됨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소그룹에서 영적인 재생산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건강하며 제대로 기능하는 소그룹에는 그리스도안에서 신생아들의 울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나오는 신생아실과 같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자기들이 용서받았음을 너무나도 알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사람들이 자기들이 용서받았음을 알 수 있기만 한다면, 심리치료를 하는 병원들의 침대들이 텅텅 비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이 섬기는 소그룹이 영적인 열매가 아름답게 영글어가고 있는지, 태신자들이 신앙의 모태에서 잘 자라나고 있는지, 신생아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 소그룹인지 점검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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