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사랑’이란 대답이 나오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긍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업 경영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 가치나 성공적인 브랜드 마케팅의 핵심 원리를 질문했는데 그 대답이 ‘사랑’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하십니까? 가장 세상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사랑이 정답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사랑에 대해 침묵하는 세상
‘사랑’에 관해서만은 기독교가 어떤 집단보다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 이미지에 대한 조사에서 ‘기독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이 대표적인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사실 지난 역사 동안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전력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대표되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의 선배들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세상을 향해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서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이전보다는 훨씬 축소된 범위에서만 적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실적 여러 영역에서 사랑이 일으키는 변화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영역이나 개인의 내면이나 정신적인 면을 다루는 측면에서만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치나 경제와 같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낯설어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 중요한 가치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답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사랑을 외면하고 거절했던 세상이 사랑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여섯 가지 진실
가장 세속적인 영역인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특히 소비자의 주머니를 어떻게 하면 잘 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이들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브랜드라는 지극히 상업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 [러브마크](도서출판 서돌 간)에서 저자 케빈 로버츠는 사랑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여러 기업들을 컨설팅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철처히 비즈니스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정리한 사랑의 요체가 무엇인지 주목해 보십시오.
첫 번째는 경고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고독한 사람들은 조기사망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3-5배 가량 높다고 한다. 많은 서구 국가에서 출생률이 하락하며 혼자 사는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세상에는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의다. 사랑은 많이 좋아하는 것 이상이다. 사랑은 좋은 감정을 넘어선 근원적인 애착이다. 정말 멋진 비유가 하나 있다. 애틀랜타 에머리 대학 연구진이 뇌 활동을 스캐닝해 본 결과 뇌가 일정한 활동을 할 때면 특정 부위가 빛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가?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근사한 사랑의 정의가 아닌가.
세 번째로, 사랑은 반응하는 것이며, 섬세하고 본능적인 감각이다. 사랑은 언제나 쌍방향이다. 그렇지 않을 때, 사랑은 제 이름 값을 못한다. 더 잘 하고 못 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사랑할 능력이 있고 사랑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네 번째 진실은 우리가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의 찬란한 빛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소중한 경험들을 함께한 사람들-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가까운 친구 간의 사랑도 잊지 말자. 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콘서트, 토요일 밤, 차가운 벡스 맥주 같은 것들을 사랑한다. 당신을 도취시키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다.
다섯 번째, 사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의 감성적 리듬에 반응하는 기술은 세월이 흘러야 익힐 수 있다. 사랑에는 역사가 있다. 사랑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고,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오한 사랑의 진실은 사랑을 명령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저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권력과도 같이, 사랑은 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사랑의 주도권만은 놓치지 말자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러다가는 사랑의 주도권마저 놓쳐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이론적인 면에서부터 실천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랑에 대해 더욱 철저해져야 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랑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어버린다면, 과연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내어 놓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도덕성 부분에서는 본이 되기보다는 이미 지탄의 대상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이제 남은 것은 사랑지도 모릅니다. 교회 안팎으로 우리의 사랑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우리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기를 소원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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