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657호 - 함께 싸워야 할 현실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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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싸워야 할 현실의 문제들

소그룹을 인도하다 보면 구성원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함께 축하할 만한 좋은 일도 있지만, 그보다는 함께 기도하고 이겨 내야 할 문제들이 더 많이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자녀를 향한 염려, 직장에서의 부담, 관계 속 상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의 낙심까지 삶의 무게는 여러 모습으로 나눔의 자리에 올라옵니다.

그럴 때 소그룹 인도자는 자연스럽게 조언자의 위치에 서곤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기도해 보세요.”와 같은 말은 분명 필요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와 같이 싸워 주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구성원은 깊은 위로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소그룹은 단순히 삶의 문제를 나누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삶의 문제 아래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실제로 신뢰하지 못할 때 자라고, 낙심은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지 못할 때 깊어집니다. 소그룹은 삶의 문제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함께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의 약속 앞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염려와 싸우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지 못하는 마음과의 싸움

소그룹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나눔 가운데 하나는 염려입니다. 부모님의 건강, 자녀의 학업과 진로, 직장의 상황,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수많은 염려를 나눕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계속 붙들며 평안을 잃기도 합니다.

이때 소그룹은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에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따뜻한 위로도 필요하지만,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약속을 붙들게 해야 합니다.

존 파이퍼는 염려가 수많은 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정을 염려하면 탐심과 욕심으로 치달을 수 있고,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염려는 사람을 짜증스럽고 무뚝뚝하며 퉁명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관계를 염려하면 마음을 닫고 무관심한 태도로 거리를 두게 되며, 상대의 반응을 염려하면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을 말하게 되기도 합니다.

파이퍼는 염려의 뿌리가 주님이 베푸실 장래의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나를 돌보시고,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시며, 내 삶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지 못할 때 염려는 깊어집니다. 결국 염려와의 싸움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 없음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구성원의 염려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그 염려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믿음의 질문으로 이어지는지 함께 보게 해야 합니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일까요?” “오늘 이 염려 앞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우리를 만나 주십니까?” 이런 질문은 삶의 이야기를 다시 말씀의 자리로 이끌어 줍니다.

낙심과 싸우라: 하나님이 회복시키실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과의 싸움

소그룹 안에서 자주 만나는 또 하나의 현실은 낙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낙심은 단순히 기대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실망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 반복되는 실패, 관계의 어려움, 영적 무기력 속에서 영혼이 깊이 가라앉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는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키실까?”, “나는 다시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물론 낙심의 뿌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서의 복잡성, 신체적 연약함, 오랜 상처와 환경의 영향이 함께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한 사람에게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낙심이 우리 마음을 깊이 잠식해 갈 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은혜를 베푸시고, 무너진 영혼을 다시 일으키시며,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신다는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영혼도 때로는 소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시편 19편 7절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라고 말하고, 시편 23편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깊은 고통과 씨름하셨습니다. 가까운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셨고, 함께 깨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으며, 아버지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으시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성경은 영혼의 침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홀로 머물러 있지 말고 말씀과 기도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그러므로 소그룹은 낙심한 사람이 혼자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믿음을 붙들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힘이 없을 때, 지체들이 말씀을 읽어 주고, 함께 기도해 주며, 하나님이 이전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낙심과의 싸움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는 싸움입니다. 소그룹은 그 싸움을 함께 감당하며, 낙심한 성도가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을 다시 바라보도록 돕는 자리입니다.

함께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라

소그룹은 서로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 속에서 혼자 싸우지 않도록 곁에 머물며, 염려 앞에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낙심 속에서는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을 함께 붙드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그룹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연약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들려주며 함께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 이 글은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존 파이퍼, 두란노)의 내용을 일부 발췌 및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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