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717호 - 세대 간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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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뿐 아니라 교회도 세대 간의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고 위 세대가 젊은이들을 바르게 양육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교회는 여러 세대들의 집합체인가? 그리고 다음 세대는 ‘양육’되어야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즉, 교회는 노년, 장년, 청년, 청소년, 어린이 등으로 세대가 나뉘어져 있고, 그리고 장년 세대는 청년, 청소년, 어린이 세대를 양육하고, 청년 세대는 청소년과 어린이 세대를 양육해야 한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교회 내에 여러 세대가 존재하고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양육해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각 세대가 경험한 것이 서로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세대’를 말할 때, 세대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같은 시간대에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세대’입니다. 위 세대가 계속 아래 세대를 자기들과 같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가는 동역자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 삶의 전 영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동기와 사명을 가지고 함께 모이는 자리입니다. 인종, 성, 사회적 지위, 빈부차이, 문화적 차이 등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양육한다는 생각에는 좀 더 많은 인생경험을 한 위 세대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아래 세대를 가르쳐서, 위 세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함의가 깔려 있습니다.
원래 나이를 가지고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은 마케팅 기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상을 세분화하고, 각 나이 대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가를 따지고, 그들이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광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끔은 유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나이를 따라 교육 내용을 정하고, 각 나이에 맞는 제자훈련을 하다 보니 오히려 더욱 세대 간의 공유점을 가지지 못하는 현상을 낳습니다.
실제로 주일학교나 청년회 등에서는 그 또래끼리 모입니다. 그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세대는 몇 명의 교사와 목회자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세대는 아래 세대끼리만 교류하고, 위 세대와의 연결점은 교사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없는데, 위 세대는 늘 가르치려고 할 뿐 아래 세대의 경험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위 세대는 아래 세대가 오히려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아래 세대는 위 세대가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목회자라면 이 사실을 더욱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대부분 소위 위 세대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위 세대’들은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어린이들을 모아 한꺼번에 같은 것을 가르쳐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도 세상이 쓰는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진정한 목적인지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아래세대’들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청년들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동역자로 여기는 태도를 가질 때 우리가 당면한 ‘세대갈등’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글은 『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 (데이비드 키네먼 저, 국제제자훈련원 간)의 일부 내용을 발췌,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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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21세기 급변하는 문화 속에서 청년들이 신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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